학회참관기

ASHG Annual Meeting 2022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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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씨젠의료재단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인해 2 년 간 온라인 학회로 대체되었던 ASHG (American Society of Human Genetics) 연례 회의가 코로나19 유행 감소세와 각국의 거리두기 정책 완화로 인해 3년 만에 LA에서 개최되었다. 초록을 제출하고 학회에 등록할 때까지만 해도 현지에서 코로나가 확진될 경우라든가 출국 전 PCR 검사 양성일 경우 어찌할 지 고민이 많았다. 다행히 10월 1일 부로 해외 입국자 격리 의무 해제 및 입국 후 코로나검사가 중단되어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첫 날부터 학회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연구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13,700 평방미터의 학회장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모습을 보고 판데믹 기간 동안 목말랐던 연구자들의 학구열을 느낄 수 있었다.
학회는 LA 컨벤션 센터에서 5 일 간 개최되었다. 세계 최대의 유전 학회인 만큼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국내 학회와 마찬가지로 최첨단 기술에 대한 강의나 학술적으로 인기 있는 발표가 많았으나, 평소 들어볼 수 없었던 내용의 강의들도 준비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사진1. 포스터홀 입장을 기다리는 참가자들

이번 학회의 presidential symposium은 ‘African Genomics’였다. 나의 짧은 식견과 편견으로 아프리카의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내용을 배울 것이 없지 않을까 반신반의하였으나 생각 외로 아프리카에서 유전학자들이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물론 최신 장비나 첨단기술을 응용한 연구는 별로 없었으나 아프리카 각국의 기반 시설, 연구 예산, 전문 인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자국민들에게 유용한 검사를 제공하고 지역 특색에 맞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또한 프로그램에는 연자가 두 명으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현장에서 강의한 연자가 두 명이었고, 실제로는 여러 명의 아프리카 연구자들이 화상 강의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되는 아프리카 보건 사업과 연구 내용을 소개해주었다. 코로나19로 발전한 화상강의 시스템과 온라인 학회가 판데믹이 끝난 후에도 제3세계 과학자들이 학회에 참여할 수 있게끔 경제 지리적 장벽을 낮추는 데 일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또한 연제와 연자 선정에서 학문과 사업의 경계가 약화된 것 또한 연제와 연자 선정에서 학문과 사업의 경계가 약화된 것 또한 국내 학회와의 차이점으로 느껴졌다. 교육 세션, 코랩(CoLab) 세션 등 다양한 세션들의 호스트로 각종 장비 및 시약 업체가 참여하여 교육과 강의를 제공하였다. 기업에 소속된 Ph.D.들이 총출동하여 자신들의 신기술과 학문적 업적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평소 접해 보지 못한 여러 특허 기술들이 끝없이 소개되어 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추가적인 이점으로 배경에 구애받지 않는 연자 선정 덕분에 연자풀의 저변이 넓어져 LA 컨벤션 센터의 4개 층을 꽉 채우는 동시강연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다양한 신생 기술이 사업화되어 공존하고 시험받는 분위기에서 다음 세대를 책임질 헤게모니가 탄생할 것이라 생각하니 새삼 부러운 기분이 들었다.

전술하였지만 LA 컨벤션 센터 4개층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대규모의 세션 또한 평소에 접하기 힘든 신선한 경험이었다. 수많은 세션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한 학회에서 소화할 수 있는 주제를 다양화하여, 학문적 헤게모니를 잡지 못한 소수의견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본인이 관심있었던 주제들이 같은 시각에 너무 떨어진 장소에서 진행되어 대부분 듣지 못하고 놓치게 되는 것은 단점이었다. 국내 학회는 대부분 강의실이 붙어있어 한 세션에서도 관심 있는 연제에 따라 양쪽으로 오가며 강의를 듣는 것이 가능한데 본 학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였다.

학회 운영에서도 기존 학회들과의 차별점을 볼 수 있었는데, 코로나19 유행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학회인 만큼 명찰 목걸이의 색을 세 가지로 나누어 제공한 것이 그것이다. 빨간 색 명찰목걸이는 ‘50cm 이상 거리를 유지해 주십시오’; 노란 색 목걸이는 ‘근거리 대화와 악수까지 가능’; 초록색 목걸이는 ‘친밀한 대화와 허그도 가능’이라는 설명 밑에 구분되어 놓여 있었다. 학회 참석자들은 본인의 기호에 따라 목걸이를 선택하고 착용함으로써 직관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여 의도하지 않은 접촉을 당하거나 상대에게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이런 명찰 목걸이 아이디어는 비단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참여하는 세계적인 학회에서는 판데믹이 종료된 이후에도 응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회에 등록할 때 놀랐던 점이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개인정보의 성별 표시란에 남/녀 외에도 본인의 생물학적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성 등을 기준으로 성별 표시란의 선택지가 굉장히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성별 선택란의 드롭박스가 열 몇개나 필요한 지는 약간 의문이지만 이러한 분류가 전 세계적인 대세로 국제 학회에서도 점차 확대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 개최하는 국제 학회에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시안(주로 한국, 일본, 대만) 참가자만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었던 점이었다. 자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마치 판데믹이 발생했던 적이 없었던듯한 느낌을 받았다. 국내 상황이 진정되어 마스크 없이 지낼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사진2. 학회장인 LA 컨벤션 센터의 낮과 새벽. 학회장은 새벽부터 교육세션에 참석하려는 연구자들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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